변화~

변화 | 자기계발노트 | 2004/04/30 10: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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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절박하지 않은 사람들은 변화에 성공할 수 없다.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예외일 뿐이다. 이것이 변화의 속성이다. 조심해야할 것은 절박함이 변화를 쉽게
하지만, 그 때는 이미 늦은 경우가 태반이다. 그러나 이미 늦다. 마찬가지로 마흔 살 10년에 스스로를 전환시키는데 실패한 사람은 오십 이후의 인생을 보장받기 어렵다.
마흔은 폭포와 같은 시기다. 수직으로
떨어져 꽂히는 정신 없이는 삶을 바꾸기 어렵다.
현명한 경영자는 이렇게 자문한다. 지금은 좋다. 그러나 5년 후, 10년 후 우리는 무엇을 먹고 살 수 있을까 ? 현명한 직장인은 이렇게 질문한다. 지금은 괜찮다. 그러나 3년후 5년 후 나는 이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 그래서 현명한 사람들은 모두 미래의 절박함을 현재로 이끌고 들어와 지금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다.
아직 괜찮은 지금, 변화를 시도하여 좋은 미래를 얻는 것 - 이것이 우리가 변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효익이다.
이로움이 없다면 무엇 하러 어려운 일을 자초하겠는가 ? 의식의 확장 없이는 ‘절박함’을 현실로 데려오기 어렵다 . 그러므로 의식의 확장 없이는 변화도 없다. 의식적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들의 특징은 변화에 저항하게 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담배를 끊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은 담배의 위험을 알리는 모든 경고로부터 합리적 도피를 하게 된다. 통계는 왜곡되고 예외가 보편이 된다. ‘그건 쥐에게 적용되었기 때문이지. 아마 저 정도 상태가 되려면 사람의 경우는 하루에 열 갑은 피워야 할 껄’ 이라고 받아들인다.
아니면 ‘내가 아는 그 사람은 하루에 담배 두 갑씩 70년을 피워대지만 아직도 깨끗해. 그 사람 지금 아흔 둘인가 그렇지 아마’ 라고 반응한다. 이것을 자기 합리화 과정이라 부른다. 금연이라는 변화에 대한 사회적 압력에 저항하는 방어 기제인 셈이다.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무의식을 의식하도록 만드는 것’이 정신분석학의 기본적 목적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의식의 고양’이란 변화의 과정 중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프로세스 중의 하나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조금 더 살펴보기로 하자. 그들은 자신의 지금 생활이 문제가 있는 것임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내 골아 떨어져 잠에 빠지는 일상이 문제 있는 행동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아니면 퇴근 후 회사의 동료들과 모여 상사를 비난하며 술을 마시거나, 친구들을 불러내 술을 마시다 자정이 넘어서야 들어오는 일이 비일비재해도 자신은 그저 술과 사람을 좋아하는 호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지금의 생활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문제는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있는 것이며, 회사에게 있는 것이며, 상황에게 있는 것이며 사회에게 있는 것이며, 이도저도 아니면 운명의 탓일 뿐이다. 매일 일상에서 반복되고 지속되는 직장에서의 일들은 품삯일 뿐이며, 그 속에서 의미와 보람을 느끼지 못해도 인생은 그런 것이려니 한다.
가족이나 회사의 상사가 그들에게 변화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어떤 때는 경고를 주면 마지못해 따라하는 듯이 보이지만 그것은 외부의 강요에 밀려 행해진 외면적 변화에 불과하다. 변화의 주문은 귀찮은 것이고, 지겨운 바가지고, 내면의 저항을 불러일으키는 잔소리와 억압일 뿐이다.
자신의 현재가 문제가 있는 삶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해 준다. 그들은 자신의 내면에서 지금 보다 훌륭한 자신이 들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신의 기질과 재능에 맞는 새로운 일의 방식을 찾아 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신을 깨우고 탄생시키는 것’이 이제 스스로의 과제가 된다.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다. 힘을 얻어내는 과정이라 말할 수 있다. 의식의 고양은 변화라는 열차를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며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안된다. 변화는 현재의 불행에서부터 미래의 가능성을 향한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지금을 떠나지 않고는 닿을 수 없는 목적지를 향한 여정이 바로 변화인 셈이다. 밤마다 벌어지는 술자리를 버리는 것이며, 끼고 살던 TV를 끄는 것이다. 비효율적 시스템을 파기하는 것이며, 배타적 관계를 청산하는 것이다. 떠남이란 기름진 음식을 피하는 것이며, 늦게 저녁을 과식하는 습관을 버리는 것이다. 있는 습관들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진 것이 아니다. 변화는 내 꿈에 대한 그리움을 찾아가는 것이다.
바로 변화의 목적지, 나의 꿈과의 만남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것은 행복을 가정한다 만남은 ‘새로운 삶의 방식’을 의미한다. 그것은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기 위한 웰빙 식단이고, 저녁 운동이고, 주말 등산이다. 하루에 두 시간은 반드시 자신을 위해 투자하는 학습이고, 좋은 책을 읽는 독서다. 부하 직원을 대하는 수평적 태도며, 일을 대하는 창의적 시선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어제 보다 나아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진보와 발전의 정체다. 바로 우리가 원하는 인생을 향한 여행이다. 그것은 하루하루 다르게 사용한 순간들에 의해 축적된다. 그래서 하루를 바꾸지 못하면 변화는 실천 될 수 없는 것이다. 일상의 곳곳에 숨어 있는 과거의 잔해들을 갈아치우고, 새로운 삶의 관점이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고, 과거의 문제 있는 습관들을 바꾸어 갈 때 우리의 하루는 우리가 원하는 삶으로 전환된다. 일상 속에서 실천되지 못하는 것들은 아직 삶이 아니다.
삶은 하루라는 일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루를 개편하지 못하면 새로운 일상도 없다. 누군가가 우리를 바꾸려고 할 때, 우리는 불쾌해진다. 그 외부의 힘이 압도적으로 커지면 저항은 내면화되고 우리는 시키는 일을 하는 수동적 인간으로 전락한다. 이때 일은 품삯이 되고, 일상은 지루한 반복이며, 뜻대로 되는 것 하나 없는 삶이 된다. 그리고 이 수동성 때문에 결국 사회로부터 쉽게 버려진다. 자신을 찾아가는 즐거운 여정이며, 내면화 되어있던 자아를 표현하는 수단이 된다. 그것은 새로운 자아의 함성이다. 상자 속의 꿈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가는 것이다. 주변적인 삶을 청산하고 스스로 기획하고 스스로 실천하는 삶의 중심에 서게 만들어 준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고, 우리는 깨달을 수 있고, 바꿀 수 있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이것이 변화의 위대한 점이다. 우리는 어제 보다 나아지고 아름다워 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