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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나와 맞지 않았다" 고졸로 세상에 맞짱 뜨다

핫이슈정리왕 2005. 7. 9. 10:59
2005.7.8 (금) 17:32   오마이뉴스   오마이뉴스 기사보기
"대학은 나와 맞지 않았다" 고졸로 세상에 맞짱 뜨다
[오마이뉴스 안윤학 기자] "15만 달러를 그 잘난 교육에 탕진하느니 차라리 1달러50센트 내고 공공도서관 가는 게 낫겠다!"

영화 <굿 윌 헌팅>에서 주인공 윌(맷 데이먼 분)이 클럽에서 만난 하버드생 클라크에게 던진 충고다. 혹자는 윌이 하버드의 세계적인 석학도 풀지 못한 어려운 수학 문제를 단번에 해결한 '천재'이기 때문에 이런 오만한 말을 하는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도 아직까지 1달러50센트짜리 알짜 지식보다는 15만 달러짜리 대학 졸업장을 더 쳐주기 때문이다.

김수훈(32)씨는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다'는 대학 졸업장을 거부한 사람 중 하나다. 삼지(SAMG) 애니메이션의 대표인 그를 7월 2일 서울 삼성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 <오드 패밀리>의 한 장면.
ⓒ2005 삼지 애니메이션
대학 졸업장을 거부한 남자, 김수훈

삼지 애니메이션은 일반인에게는 생소하지만 업계에서는 <오드 패밀리(Odd Family)>라는 작품으로 꽤 알려져 있다.

"국내 최초로 프랑스 업체와 합작·제작해요. 제작비 80여억 원에 제작 기간도 2년 반이나 되는 큰 프로젝트죠. 프랑스 언론 재벌 '라가드르' 그룹의 티문 애니메이션과 같이 만들고 있는데 프랑스 최대 민영 방송인 TF1 방영이 확정된 상태입니다."

<오드 패밀리>는 철저하게 해외 진출용으로 기획됐다. 전체적인 포맷이나 캐릭터, 스토리도 해외 기준에 맞춰졌다. 한류 등 대부분 문화산업은 국내 검증을 거친 다음 다른 나라로 진출하는데 삼지는 역으로 세계 시장에 먼저 도전한 것이다.

"이전에도 국내에서 프로젝트를 몇 개 추진했는데 쉽지 않았어요. 문제는 자금이었죠. 전 대학을 안 나와서 선배들이나 인맥이 별로 없거든요. 한국에서는 인맥 없으면 비즈니스하기 정말 어려워요. 투자자를 모을 수 없으니까요."

"전 대학을 안 나와서 선배들이나 인맥도 별로 없거든요. 한국에서는 인맥 없으면 비즈니스하기 정말 어려워요. 투자자를 모을 수 없으니까요." - 삼지 애니메이션 김수훈 대표.
ⓒ2005 안윤학
김수훈 대표의 최종 학력은 고졸. 그도 한때는 부산 모 대학 전기공학과를 다니던 대학생이었다. 당시 전기공학과는 취업률 90%가 넘는 인기학과였고 김씨는 장학금을 타기도 했다. 하지만 대학은 그와 잘 맞지 않았다.

"대학에서 공부하는 방식이 맘에 들지 않았어요. (중·고등학교처럼) 암기 위주고,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었죠. 결국 공부를 하면서도 내가 왜 이 공부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더라구요."

고민하던 그에게 대학 공부보다 더 재미있는 게 나타났다. 바로 컴퓨터 그래픽. 김 대표는 고등학교 때부터 컴퓨터에 재미를 붙였고 대학에서 그림 관련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군 제대 후 컴퓨터 그래픽을 더 깊이 있게 공부했고 96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멀티미디어 쪽 일을 맡게 되면서 김씨는 자연스럽게(?) 대학과 멀어졌다.

"<쥬라기공원>을 보면서 '저걸 내가 한 번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다음에 내가 무슨 공부를 해야 하는지 알아 봤어요. 혼자 책 보면서 독학하기도 하고, 3D 그래픽을 하던 선배한테서 도움을 받기도 했죠."

3D 배우려고 무작정 상경... 용산 아르바이트부터 시작

당시 3D를 제대로 공부하려면 미국 회사인 SGI에서 만든 1~2억 상당의 워크스테이션이 있어야 했다. 그에게는 그만한 돈이 없었다. 96년 말, 그는 워크스테이션이 있는 서울 강남의 학원을 다니기 위해 상경했다.

한 달 학원비만 50만원이었다. 부모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그는 용산에서 컴퓨터 조립을 하는 걸로 60만 원 정도를 손에 쥘 수 있었다. 쌈짓돈이 있긴 했지만 방세부터 밥값까지 일일이 해결하는 것은 녹록치 않았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학원에서 생겼다.

"학원 강의는 창의성보다는 툴(기능) 중심이었는데 강사들도 완벽한 기능을 잘 몰랐어요. 이미 저는 3D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강사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게 없었어요. 용산 아르바이트 때문에 학원에 있는 워크스테이션을 활용할 시간도 별로 없었구요."

김 대표는 결국 한 달 만에 학원을 그만뒀다. 그리고 97년 초, 용산에서 일하며 알게 된 한국 IBM 관계자들과 '아바쿠스소프트'라는 회사를 창업했다. 교육기관에 수동적으로 의존하기 보다는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기로 한 것. 아바쿠스소프트는 대기업의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등 순탄한 길을 걸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그해 말 터진 IMF 앞에서는 더 이상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그리고 그 후로도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해야 했다.

▲ 프랑스 TF1에 방영될 <오드 패밀리>가 작업 중이다.
ⓒ2005 안윤학
대학졸업장 없는 새파란 놈이라고 왕따 당하기도

간판보다는 실력이 우선인 컴퓨터 그래픽업계에서도 대학 졸업장이 없는 사람은 도드라지는 존재였다. IMF 때문에 회사를 정리하고 98년 부산국제영화제 오프닝 타이틀 일을 맡았던 그는 능력을 인정받아 부산의 한 업체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당시 제가 20대 후반이었는데, 글쎄 사장이 실장 명함을 주더라구요. 깜짝 놀랐죠. 이미 있던 30대 중반의 팀장들이나 직원들이 기분이 언짢았는지 저를 '왕따'로 만들더라구요. 회사 이름은 밝히면 안 됩니다(웃음). 하지만 결국에는 실력으로 인정받았죠."

1998년에는 한국·미국의 전문가들과 함께 한국 최초의 풀 3D 영화 <쎌마>를 기획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프로젝트는 3개월 만에 날아갔다. 문제는 역시나 자금이었다. 돈을 끌어올 빵빵한 선·후배·동기동창이 없었던 그에게 투자 유치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기왕 '월드 와이드'한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고 결심한 거, 처음부터 해외를 공략하자고 계획을 수정했다. 마침내 그는 2000년 7월 삼지를 설립했다. 그리고 설립 1년이 조금 지난 2001년 10월 디지털컨텐츠대상 정통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 <오드 패밀리>의 한 장면.
ⓒ2005 삼지 애니메이션
"상까지 받았는데도 한국에서는 많이 인정받지 못했어요. 티문·TF1과의 계약 이후에서야 '삼지'라는 회사가 부상하고 있다는 걸 인정받았죠."

김 대표는 <오드 패밀리>가 프랑스에서 성공하지 못했다면 한국에서 삼지가 클 수 없을 거라고 말한다. 한국에서는 작품이 아무리 훌륭해도 인맥과 업력, 배경 없이는 사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의 명문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다면 해외에서 뭔가 성과라도 내오라는 식이다. 만약 해외에서도 성공하지 못하면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 금세 나온다고. 이런 인식 때문에 사업 초기 김 대표는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삼지 입사지원서에는 출신대학 란이 없습니다"

삼지 애니메이션의 온라인 입사 지원서에는 '공동 작업을 할 수 있는 인성과 실력 위주로 구체적 학력을 묻지 않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최종 학력(고졸/ 대졸/ 대학원졸)'을 묻는 란이 있기는 하지만 출신 대학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는다.

"저희는 학력을 절대로 보지 않아요. 여기는 실력으로 인정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니까요. 그림으로 결과가 '탁' 나오는 거죠. 지금 애니메이션 조감독을 맡고 있는 이영준씨는 고등학교 중퇴해서 입사한 친구죠. 중학교 3학년 때부터 3D를 했으니까 정말 실력이 상당합니다. 아, 우리 제작 실장님도 고졸입니다(웃음)."

▲ 삼지의 애니메이션 조감독을 맡고 있는 이영준씨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김수훈 대표. 이영준씨의 최종 학력은 고등학교 중퇴다.
ⓒ2005 안윤학
그에게 '대학은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대학을 '꼭' 나와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김수훈 대표는 현 애니메이션 교육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대학은 많고 배출되는 인력도 굉장히 많은데, 대학 졸업한 사람 포트폴리오가 독학한 사람보다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결국 대학을 졸업해도 신입사원으로 들어오면 재교육을 해야 해요. 어찌 보면 사회적인 소모죠."

그가 대학 졸업장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기 일에 대한 열정이다.

"자기 열정이 중요하죠. 저는 밤도 많이 새고, 개인적인 생활을 많이 못해요. 처음에는 거의 회사에서 살다시피 했죠. 그래도 이게 내가 좋아하기 때문에 하지, 싫으면 그렇게 하겠어요? 죽지…. 결국 노력 없이는 성공할 수 없어요."

앞으로도 김수훈 대표는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 졸업장을 따고 싶은 마음이 없다. 대학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는 새로운 분야에 빠진다면 또 모를까. 그는 천오백만원이 넘는 대학 졸업장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안윤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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