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김민수 기자] 해가
뉘엿뉘엿 서편으로 기울어갈 즈음, 걷는 이 많지 않아 억새풀 우거진 숲길을 따라 지미봉자락을 걸었다.
또 하루가 간다. 그리고 이제
또 한 계절이 가고 또 다른 계절이 시작되려고 한다. 계절은 이어져있는 것인데 가르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눈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여름이
다르고 가을이 다른 것을 어쩌랴!
어느 순간, 이제 더 이상 그 이전의 계절이 아닌, '보라,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소리칠 수밖에 없는 그런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황혼,
그랬다. 황혼이었다.
인생의 황혼기는 쓸쓸하다. 돌이킬 수 없는 젊은 날의 아름다운 추억들도 황혼기에는 쓸쓸하게 다가올 것 같다.
그러나 쓸쓸한 것만은 아닌 듯하다. 황혼의 때, 짧지만 아름답게 세상을 물들여 가는 것을 보면 쓸쓸한 것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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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다. 그 붉음 속에 모두가 자기의 빛깔을 나타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자기의 빛을 감춤으로 자기를 오히려 극명하게 드러내는 시간이 황혼의
시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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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김민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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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풀 사이에 강아지풀 하나 피어났다. 이제 거반 씨앗도 날려버린 강아지풀, 내년 그 곳, 그 자리에는 강아지풀이 무성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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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김민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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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가 막 피어나기 시작한다. 물론 이미 은빛물결을 이루고 있는 곳도 있지만 이 곳은 이제 막 억새의 물결이 일기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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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김민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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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를 잡아야만 위로 향하는 덩굴식물 사위질빵이다. 이젠 눈송이같던 꽃 다 날리우고 날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이 가을에 새순을 내어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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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김민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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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바람이 불면 정말로 눕는다. 시적인 표현이 아니다. 그리고 바람이 자면 일어난다. 이것 역시 시적인 표현이 아니라 그들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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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김민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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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 들이기도 전인데 바람에 이파리들을 놓아버렸다. 그렇게 놓아버린 곳에는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이할 꽃눈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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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김민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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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너머로 쉼의 시간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며 넘어가는 해를 보내는 나무의 마음, 바람에 담아 손짓을 하고 작은 이파리 바람에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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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김민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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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가지 색으로 표현되는 들풀들 하나하나 그 색을 다 드러내는 것보다 더 깊게 뇌리에 각인된다. 화사한 것이 능사가 아니구나, 그냥 그렇게 단순한
색감으로 깊게 남는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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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김민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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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초의 꽃들이 봄에만 피는 줄 알았는데 아주 가끔씩 가을에도 피어난다. 한 겨울에도 푸릇푸릇 숲길에 피어날 인동초,
이제 올라오는 이파리들이 겨울을 맞이하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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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김민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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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넷, 여섯, 그래, 이제 딱 여섯 장 남았다. 월동준비, 그들은 이렇게 놓아버림으로 겨울을 준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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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김민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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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창밖으로 가로등 불빛 하나 들어오고, 온통 캄캄한 밤이 되었다.
시골의 밤은 일찍 찾아와 하루를 짧게 느껴지게 한다. 인공의 빛과 아날로그 시계의 초침소리에 아직 이른 시간이라고 최면을 걸어보지만 '아니,
밤이 깊었어!'할 뿐이다.
저 멀리 마주보이는 집 창가에 희미한 형광등 불빛이 새어나오고, 간혹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가 가을이
제법 깊었음을 알려준다. 귀뚜라미 소리에 아날로그 시계의 초침소리도 잦아든다.
/김민수 기자
덧붙이는
글
기자소개 : 김민수 기자는 제주의 동쪽 끝마을에 있는 종달교회를 섬기는 목사이며 자연산문집<달팽이는 느리고,
호박은 못생겼다?>와 <내게로 다가온 꽃들 1, 2>, <희망 우체통>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오마이뉴스에 실리지 않는 그의
글들은 <강바람의 글모음>www.freechal.com/gangdoll을 방문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