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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지식 버려야 부를 얻는다.

핫이슈정리왕 2006. 8. 26. 23:59

2006년 8월 26일 (토) 02:54   조선일보

‘쓰레기 지식’ 버려야 富를 얻는다



[조선일보]

미래를 확실히 아는 사람은 없다. 어떤 일이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를 내다볼 수 있다면 그 건 더 이상 ‘미래’가 아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미래를 미리 엿보고 더듬어 보려는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미래학자’는 그 일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정체불명의 미래를 붙들고 씨름하는 그들에겐 다른 어떤 직업보다 날카로운 통찰력과 예지력이 요구된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77)가 15년의 침묵을 깨고 책을 냈다. ‘미래쇼크’ ‘제3 물결’ ‘권력이동’에 이은 네 번째 저서의 제목은 ‘부의 미래(Revolutionary wealth)’다.

노(老) 학자는 이미 20년 전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에 이은 지식혁명의 도래를 설파한 바 있다. 그 날카로운 통찰력과 예지력이 이 번 저서에서도 곳곳에 번득인다.

이 책은 먼저 우리가 이제 막 들어선 지식혁명이라는 대 소용돌이의 본질과 변화 방향을 분석한다. 토플러는 지식혁명이 불러올 미래가 ‘시간, 공간, 지식’에 의해 좌우될 거라고 본다. 그는 오늘날 세계 여러 나라가 직면한 위기가 경제발전 속도를 제도와 정책이 따라가지 못하는 데서 생기는 ‘속도의 충돌’, 즉 시간의 문제라고 진단한다. 변혁을 주도하는 기업과 작고 탄력적인 조직의 네트워크로 연결된 비정부기구(NGO)는 시속 100마일(160㎞)과 90마일로 쌩쌩 질주한다. 반면 노조(30마일)와 정부(25마일), 학교(10마일), 정치권(3마일)은 느려터진 거북이 걸음으로 고속도로의 흐름만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관료주의, 교사노조가 좌지우지하는 공장형 학교교육, 봉건적 발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정치권이 지식기반 시스템과 선진경제로의 발전을 가로막는다. 미국 얘기라지만 바로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토플러가 그리는 미래는 조지 오웰의 ‘1984’ 같이 어둡지는 않다. ‘불확실하지만 도전해 볼 만한 미래’다. 토플러는 지식혁명이 만들어낼 새로운 부의 창출 시스템과 자본주의의 미래에 대해서도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자본주의에 대한 새로운 정의(定義)는 무엇인가?” “제4의 물결 속에서 자본주의는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 것인가?” 그가 해답의 실마리로 던진 화두(話頭)는 ‘무형성(無形性)’이다. ‘보이는 부(visible wealth)’와 ‘보이지 않는 부(invisible wealth)’ ‘보이는 시장(市場)’과 ‘보이지 않는 시장’, ‘보이는 화폐경제’와 ‘보이지 않는 비(非) 화폐경제’. 이런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는 것들’과 상호작용하면서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켜 일찍이 역사상 없었던 모습의 부의 창출 시스템을 만들어내고, 그 것이 자본주의의 미래를 바꿔나갈 것이란 얘기다. 토플러는 “무형성(無形性)을 향한 혁명적 변화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자본주의 변신의 첫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이런 혁명적 변화 속에선 지금까지의 지식과 산업시대의 발상은 더 이상 쓸모가 없다. 쓸모 없어진 지식, 정보의 홍수 속에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 지식, 토플러는 이를 ‘압솔리지(obsoledge)’라 부른다. ‘쓸모 없다’는 뜻의 ‘obsolete’와 ‘지식’이란 뜻의 ‘knowledge’를 결합한 신조어다. 이런 ‘무용(無用) 지식’을 걸러내는 능력이야말로 미래의 부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가 될 것이라고 충고한다.

그는 아시아란 ‘공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부의 중심축이 지난 세기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갔고 21세기는 아시아로 이동해, 특히 중국이 세계의 부를 지배할 것이라고 보았다. 눈길을 끄는 건 아시아를 언급하면서 중국·일본과 나란히 한국에도 별도의 장(章)을 할애한 점이다. 지식혁명의 물결 속에서 한국의 역동성에 기대를 건다는 뜻일까? 그는 한국에 대해 “불과 한 세대 만에 제1, 제2, 제3 물결을 모두 이뤄낸 나라”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한국이 40년 만에 산업화 물결을 타고 넘어, 정보화 물결의 맨 앞줄을 달리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그러나 한국의 미래는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진단했다. 한국의 속도 지상주의 문화와 신중하고 더딘 남북관계 사이의 모순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한반도의 미래가 달려있다는 얘기다.

(이준 논설위원 [블로그 바로가기 jun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