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런 일은 우리의 삶 가운데 너무나 자주 일어나는 현실이고, 그것 때문에 가끔씩 혼란스러워하는 문제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형통과 우리의 형편과의 문제를 살펴보고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한다.
1. 형통과 형편은 상관이 없다.
2-3절/
23절/
여기서 요셉을 가리켜서 "형통"한 자가 되었다고 증거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형통"이라고 하면 우리는 "형편"이 잘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즉, 어려운 일 없이 하는 일이 척척 잘 풀려나가는 것을 "형통"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통?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런 우리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증거해 준다.
왜냐하면 오늘 요셉을 형통한 자라고 했을 때 요셉은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였기 때문이다.
즉, 요셉이 원치 않는 어려운 일을 만난 형편이었는데도 하나님은 요셉을 형통한 자라고 말씀하신다.
2절/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 형들에게 팔려서 애굽의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렸을 때이다.
23절/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 억울한 누명을 쓰고 그것도 주인마님을 성폭행하려고 했다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이다.
전혀 "형통"이라는 말과 요셉의 처한 "형편"은 상관이 없음을 보게 된다.
그렇다면 "형통"은 무엇인가?
오늘 본문에 요셉을 가리켜서 "형통한 자" "그의 범사에 형통하였다"고 하는 말마다 함께 나타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다"는 것이다.
2절/
3절/
23절/
무슨 말인가?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는 사람은
형편이 어떠하든지 간에 무슨 일을 만나든지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인 것이다.
좋을 때는 말할 것도 없고, 나쁜 일을 만났을 때에도,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에도
하는 일이 척척 잘 될 때는 말할 필요도 없고, 하는 일마다 잘 안풀리고 어려움이 있을때에도 언제나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런 사람을 가리켜서 형통한 사람이라고 증거하는 것이다.
오늘 요셉은 그가 형들에게 팔려서 애굽에 보디발의 집에 종이 되었을 때든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에도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님과 함께 하였고, 하나님의 경배하며 찬양하였던 것이다. 그런 요셉을 가리켜서 하나님께서 "형통케 한 자"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2. 하나님께 함께 하셔도 어려움이 있다
2-3절/
23절/
요셉이 종으로 팔렸을 때,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을 때 그때에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다고 증거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아무런 어려움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려움이 생기면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아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데도 어려움이 있고, 어려운 일을 만나기도 한다.
뿐만아니라 한번 어려움을 당했을 때 하나님의 은혜로 문제가 잘 해결되었다고 해도, 얼마 있지 않아 또다시 어려움을 당하기도 한다.
4절/
요셉이 비록 애굽의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리는 어려움을 당했지만
하나님께서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게 하셔서 가정총무가 되게 하셨고, 그 집에 복을 주셨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었는가?
바로 그런 때에 보디발의 아내로 인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주인에게 미움을 받고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이다.
19-20절/
얼마 전 하나님께서 주인의 마음을 주장하셔서 요셉에게 은총을 베풀게 하셨었는데,
바로 그 주인의 마음이 이제는 요셉을 향해 분노하여 요셉을 감옥에 가두었던 것이다.
이럴 때 우리는 흔들리면 안 된다.
그렇다면 지난번 주인에 은혜를 입고 가정총무로서 생활하였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던가?
분명 하나님의 은혜 맞다.
그러나 그런 요셉에게 이번에는 주인에게 미움을 받고 감옥에 갇히는 어려움이 생기게 된 것이다.
분명한 것은 그때도 지금도 하나님은 항상 요셉과 함께 하셨고, 그를 형통케 하셨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삶에도 어려움이 생길 수 있고, 또 그 어려움이 해결되어 기뻐하다가도 또 다른 어려움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여전히 하나님께서 함께 하고 계심을 기억해야 한다.
예) 다윗 -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임에도 젊은 시절 사울왕에게 쫓겨서 죽을 고비들을 넘기고, 왕이 되고 난 뒤에도 아들에게 좇겨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많은 어려움을 당했었다.
예) 예수님의 제자들 - 복음전파하는 사역에 항상 핍박과 어려움들이 있었다.
예) 사도바울 - 가는 곳마다 환란과 핍박이 있었다. 그리고 순교했다.
예) 예수님을 모시고 가는 배에도 풍랑이 일어났다.
(막 4:36) 저희가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막 4:37)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시 37:23)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 (시 37:24)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시 34:19)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3. 성도의 고난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다.
우리는 요셉의 나중을 잘 안다.
그가 애굽에 종으로 팔려와 나중에 애굽의 둘째 치리자인 총리가 되었다.
자기 유대민족을 가뭄과 기근에서 구원하고, 애굽 온 땅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위대한 삶을 살았다.
그런데 요셉이 그렇게 되기까지 오늘 본문에 요셉이 당한 어려움 하나하나가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요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가 애굽에 종으로 팔려오지 않았더라면? -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있었을까?
그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 바로 왕의 신하를 만날 수 있었을까?
그가 감옥에서 바로 풀려났었더라면? - 바로 왕이 그때 꾼 꿈을 해석할 수 있었을까?
그때 그때는 요셉에게 고난이었고, 하는 일마다 안풀리는 것처럼 보이는 일들이었지만, 그가 언제나 하나님과 함께 했을 때 결국 그 모든 것 하나 하나가 합력해서 아름다운 축복이 되었던 것이다.
(창 45: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창 45: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어려움이 있을 때 그 어려움 앞에 낙심하면 안된다.
비록 당장은 그것이 슬퍼보이고 낙심이 될지라도, 그 배후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의 인생 1-2년 살다가 갈 하루살이가 아니다.
우리의 경주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요셉이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낙심했더라면, 다윗이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낙심했더라면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이룰 수 있었겠는가!
(시 119:67)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시 119:71)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예) 욥의 고백
(욥 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어려운 일을 만날 때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봐야 한다.
(약 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약 1: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약 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1. 형통과 형편은 상관이 없다.
2-3절/
23절/
여기서 요셉을 가리켜서 "형통"한 자가 되었다고 증거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형통"이라고 하면 우리는 "형편"이 잘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즉, 어려운 일 없이 하는 일이 척척 잘 풀려나가는 것을 "형통"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통?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런 우리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증거해 준다.
왜냐하면 오늘 요셉을 형통한 자라고 했을 때 요셉은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였기 때문이다.
즉, 요셉이 원치 않는 어려운 일을 만난 형편이었는데도 하나님은 요셉을 형통한 자라고 말씀하신다.
2절/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 형들에게 팔려서 애굽의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렸을 때이다.
23절/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 억울한 누명을 쓰고 그것도 주인마님을 성폭행하려고 했다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이다.
전혀 "형통"이라는 말과 요셉의 처한 "형편"은 상관이 없음을 보게 된다.
그렇다면 "형통"은 무엇인가?
오늘 본문에 요셉을 가리켜서 "형통한 자" "그의 범사에 형통하였다"고 하는 말마다 함께 나타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다"는 것이다.
2절/
3절/
23절/
무슨 말인가?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는 사람은
형편이 어떠하든지 간에 무슨 일을 만나든지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인 것이다.
좋을 때는 말할 것도 없고, 나쁜 일을 만났을 때에도,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에도
하는 일이 척척 잘 될 때는 말할 필요도 없고, 하는 일마다 잘 안풀리고 어려움이 있을때에도 언제나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런 사람을 가리켜서 형통한 사람이라고 증거하는 것이다.
오늘 요셉은 그가 형들에게 팔려서 애굽에 보디발의 집에 종이 되었을 때든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에도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님과 함께 하였고, 하나님의 경배하며 찬양하였던 것이다. 그런 요셉을 가리켜서 하나님께서 "형통케 한 자"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2. 하나님께 함께 하셔도 어려움이 있다
2-3절/
23절/
요셉이 종으로 팔렸을 때,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을 때 그때에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다고 증거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아무런 어려움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려움이 생기면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아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데도 어려움이 있고, 어려운 일을 만나기도 한다.
뿐만아니라 한번 어려움을 당했을 때 하나님의 은혜로 문제가 잘 해결되었다고 해도, 얼마 있지 않아 또다시 어려움을 당하기도 한다.
4절/
요셉이 비록 애굽의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리는 어려움을 당했지만
하나님께서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게 하셔서 가정총무가 되게 하셨고, 그 집에 복을 주셨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었는가?
바로 그런 때에 보디발의 아내로 인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주인에게 미움을 받고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이다.
19-20절/
얼마 전 하나님께서 주인의 마음을 주장하셔서 요셉에게 은총을 베풀게 하셨었는데,
바로 그 주인의 마음이 이제는 요셉을 향해 분노하여 요셉을 감옥에 가두었던 것이다.
이럴 때 우리는 흔들리면 안 된다.
그렇다면 지난번 주인에 은혜를 입고 가정총무로서 생활하였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던가?
분명 하나님의 은혜 맞다.
그러나 그런 요셉에게 이번에는 주인에게 미움을 받고 감옥에 갇히는 어려움이 생기게 된 것이다.
분명한 것은 그때도 지금도 하나님은 항상 요셉과 함께 하셨고, 그를 형통케 하셨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삶에도 어려움이 생길 수 있고, 또 그 어려움이 해결되어 기뻐하다가도 또 다른 어려움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여전히 하나님께서 함께 하고 계심을 기억해야 한다.
예) 다윗 -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임에도 젊은 시절 사울왕에게 쫓겨서 죽을 고비들을 넘기고, 왕이 되고 난 뒤에도 아들에게 좇겨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많은 어려움을 당했었다.
예) 예수님의 제자들 - 복음전파하는 사역에 항상 핍박과 어려움들이 있었다.
예) 사도바울 - 가는 곳마다 환란과 핍박이 있었다. 그리고 순교했다.
예) 예수님을 모시고 가는 배에도 풍랑이 일어났다.
(막 4:36) 저희가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막 4:37)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시 37:23)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 (시 37:24)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시 34:19)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3. 성도의 고난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다.
우리는 요셉의 나중을 잘 안다.
그가 애굽에 종으로 팔려와 나중에 애굽의 둘째 치리자인 총리가 되었다.
자기 유대민족을 가뭄과 기근에서 구원하고, 애굽 온 땅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위대한 삶을 살았다.
그런데 요셉이 그렇게 되기까지 오늘 본문에 요셉이 당한 어려움 하나하나가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요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가 애굽에 종으로 팔려오지 않았더라면? -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있었을까?
그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 바로 왕의 신하를 만날 수 있었을까?
그가 감옥에서 바로 풀려났었더라면? - 바로 왕이 그때 꾼 꿈을 해석할 수 있었을까?
그때 그때는 요셉에게 고난이었고, 하는 일마다 안풀리는 것처럼 보이는 일들이었지만, 그가 언제나 하나님과 함께 했을 때 결국 그 모든 것 하나 하나가 합력해서 아름다운 축복이 되었던 것이다.
(창 45: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창 45: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어려움이 있을 때 그 어려움 앞에 낙심하면 안된다.
비록 당장은 그것이 슬퍼보이고 낙심이 될지라도, 그 배후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의 인생 1-2년 살다가 갈 하루살이가 아니다.
우리의 경주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요셉이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낙심했더라면, 다윗이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낙심했더라면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이룰 수 있었겠는가!
(시 119:67)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시 119:71)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예) 욥의 고백
(욥 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어려운 일을 만날 때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봐야 한다.
(약 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약 1: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약 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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