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인물-스토리

김밥장사 성공기

핫이슈정리왕 2005. 7. 6. 10:41
김밥장사 성공기
2005/03/21 오후 4:59 | 취미

삶의 현장속으로③ 광화문역 '김밥 아가씨' 성공노하우
[조선일보 2004-08-27 08:37]

"인사 잘 하고 부지런한 게 경쟁력이죠"

[조선일보 진중언 기자]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에서 내려 발걸음을 재촉해 지상의 통로로 한 무리의 직장인들이 쏟아져 나오는 모습은 우리에게 익숙한 출근길 풍경이다. 빠듯한 출근 시간에 아침밥 챙겨 먹고 나오기란 ‘하늘의 별따기’라 생각하는 직장인이라면 지하철 출구 한켠에서 김밥을 파는 이를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3번 출구에서 김밥을 파는 황지희(여·24)씨의 하루는 남들보다 서너시간은 일찍 시작된다. 매일 오전 4시에 일어나는 황씨는 “어머니, 언니 그리고 동네 아주머니 한 분까지 동원돼 매일 새벽 ‘전쟁’을 치른다”고 했다. 밥솥 여러개를 비워가며 밥을 짓고, 김·단무지·햄 등 간밤에 준비해 놓은 재료를 놓고 김밥을 말고, 썰고, 은박지로 각각 포장을 한다. 황씨의 아침 주요 임무는 계란 지단을 부치는 것. 혹시라도 상할까봐 매일 아침에 직접 만들어 쓴다.

6시 40분쯤 황씨는 종이박스 2개에 김밥과 샌드위치를 담은 뒤 서대문구 남가좌동 명지대 근처 집에서 출발, 택시를 타고 일터인 광화문역에 도착한다. 3번 출구 앞에 자리를 잡고, 한쪽엔 김밥 다른 쪽엔 샌드위치와 떡·꽈배기 등을 올려놓으면 일단 준비 끝. 7시부터 장사를 시작한다.

지하철의 도착에 따라 사람들은 밀물과 썰물처럼 쏟아져 나왔다가 사라진다. 9시가 가까워질수록 직장인의 발걸음은 더 바빠지고 황씨의 손도 덩달아 빨라진다.

정신없이 검은 비닐봉지에 김밥을 하나씩 담아 건네고 손님에게 거스름돈을 챙겨주는 중에도 황씨는 씩씩한 목소리로 “맛있게 드세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란 인사를 빠뜨리는 법이 없다.


9시 30분이면 장사 끝. 황씨는 팔고 남은 김밥과 떡을 자신의 가방과 박스 하나에 차곡차곡 챙긴다. 그리고 상자를 번쩍 들고 이내 지하철을 타러 내려간다. 신촌에서 어머니를 만나 남은 김밥을 건넨 뒤 황씨의 하루는 또다시 바빠진다.

세수와 화장을 다시 한 뒤 광진구에 있는 L마트로 가서 낮12시부터 오후 9시까지 판매 도우미 아르바이트를 한다. 중간에 1시간의 저녁 식사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 내내 서서 손님들에게 판촉행사를 한다. 9시에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10시부터 다음날 장사할 거리를 챙긴다 김밥 재료를 사서 다듬어 놓고 밤 12시쯤 잠자리에 든다.

황씨는 2001년 가을부터 광화문역에서 김밥을 팔기 시작했다. 황씨는 “장사를 시작하기 앞서 홍대앞, 이대앞, 당산 등 지하철역을 돌며 다른 노점상이 선점하지 않은 비어있는 지하철 출구를 찾아다녔다”며 “처음엔 아는 사람 만날까봐 가슴이 두근거려 손님들 얼굴을 제대로 못봤다”고 했다.

“젊은 여자 몸에서 향수가 아니라 온통 김밥냄새 뿐”이라는 황씨. 3년 정도 장사를 하다보니 노점상이지만 단골도 많이 생겼다. 단골이 생기다보니 뜻하지 않은 고마운 선물을 받고 감동한 적도 있다고 했다.

“작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중년의 여자분이 오셔서 가죽장갑을 선물해 주셨어요. 자기는 한번도 김밥을 산 적은 없지만 제가 매일 장사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고 말씀하시면서요. 또 샌드위치를 단골로 사 가시는 미국인 한 분은 크리스마스 카드와 함께 초콜릿을 한아름 선물하셨구요.”

솔직히 황씨가 김밥을 얼마나 파는지가 가장 궁금했다. 황씨는 “목요일 금요일이 제일 장사가 잘 되고, 주5일 근무가 늘어나면서 토요일은 평일의 반도 안팔린다”고 말할 뿐 정확한 개수를 말하지 않았다. 계속 끈질기게 물어보니 황씨는 “김밥, 샌드위치 등을 다 합쳐 토요일에 100개쯤 판다”고 털어놨다.


“노점상으로 가장 큰 어려움이 뭐냐”고 묻자 “단속하는 지하철역 직원들과의 마찰과 경쟁상대”란 대답이 돌아왔다. 황씨는 “단속요원에겐 무조건 잘못했다, 죄송하다고 말한다”며 “그래도 아직까지 김밥 상자를 뺏어가거나 쫓겨난 적은 한번도 없다”고 말했다.

황씨의 경쟁상대는 다름 아닌 같은 지하철 출구에서 김밥을 파는 사람들. 황씨는 “지금까지 모두 9명의 경쟁자가 있었는데 가장 오래 계신 분이 한달 반을 하다가 결국 철수했다”고 말했다.

아직은 어려보이는 20대가 겪기엔 다소 거칠어 보이는 노점상들 속에서 9명의 경쟁상대를 줄줄이 내친 황씨의 경쟁력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황씨는 “어린 여자애가 인사 잘하고 부지런하다고 생각해 많이 팔아주시는 것 같다”며 쑥쓰럽게 대답했다.

“노점에서 장사하는 게 자랑은 아니지만 부끄러운 일도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황씨는 “생활비를 계속 보태면서 돈을 모아 내 꽃가게를 운영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또다시 전쟁같은 일상 속으로 총총히 뛰어들어 갔다.

(진중언기자 jinmir@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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